지리/지질-인문학

지도 1-5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열대 해양무역 항로와 해항도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열대 해양무역 항로와 해항도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는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의 주요 해양무역 도시에 상관들을 설치했다. VOC는 젤라디아(타이완)와 류큐(오키나와)를 거쳐서 데지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양무역 네트워크를 만들어갔다. VOC는 무역회사인 동시에 군사기구였으며, 네덜란드가 ‘해양 주권’을 장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외교기관이기도 했다.

그림 3-3 루스벨트의 카리브해

루스벨트의 카리브해

그는 미국의 힘이 대서양과 태평양에 모두 미치는 것으로 명확하게 인식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더 나아가 미국이 거대 세력으로 부상할 곳이 바로 태평양이라고 인식하여 거대 규모의 해군을 세우려고 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지도 4-1 콜럼버스의 네 차례 항해

콜럼버스의 네 차례 항해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에 관한 수많은 물음 중에서 열대학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콜럼버스는 왜 서쪽이 아닌 남쪽으로 항해했을까?”이다.
항해 과정에서 그가 한시라도 잊지 않았던 대단히 중요한 원칙이 있다. ‘경도’보다는 ‘위도’가 항해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지침이라는 점이다.

지도 4-4 마젤란 항해 지도

마젤란 항해 지도

마젤란 항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몰루카 제도의 향료 획득을 위한 새로운 항로의 개척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몰루카보다 한참이나 북쪽에 있는 필리핀으로 항해를 해서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마감하게 되었을까?

지도 4-5 마닐라-갈레온 무역 항로

마닐라-갈레온 무역 항로

마닐라 – 아카풀코 갈레온이라고 하면 무역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무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스페인 식민화 사업의 본질이었다. 이는 1565년부터 1815년까지 250년간 지속되었다.

지도 4-6 영국의 인도 대삼각측량사업

영국의 인도 대삼각측량사업

영국은 1790년대부터 대삼각측량사업이라는 새로운 지리측정법을 개발하여 인도의 자연지리를 정밀하게 조사・측정했다. ‘제국 만들기’를 위한 실용적 도구로서의 지리학과 지도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도 4-7 아프리카의 부족별 분포

아프리카의 부족별 분포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수천 개의 부족들은 각자의 고유한 언어, 신앙, 예술과 지식을 발달시켜왔다.

지도 4-8 서구의 아프리카 분할

서구의 아프리카 분할

서구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욕망에 맞게 아프리카를 분할해버렸다.
이런 제국주의적 분할은 현대아프리카 사람들의 모든 삶을 규정하는 구조가 되어 왔으며, 현대 아프리카의 비극적 기원이 되고 있다.

지도 7-2 13~14세기 세계체제

13~14세기 세계체제

13세기 고려의 해양무역은 취안저우와의 무역을 통해서 첫 번째 하위체제에 포섭되었다. 조선 시대도 초기에는 이런 체제를 유지했지만, 명나라 정화의 일곱 차례에 걸친 ‘남해 원정’(1405-1433) 이후로 해금 정책을 실행하면서, 조선은 전 지구적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와 단절되었다.

지도 7-3.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쿠빌라이 칸이 원대한 해양제국의 전망을 갖고 동남아시아 정복에 큰 공을 들였음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원대 후기 재정의 30-40 퍼센트가 해양무역에서 충당되었음을 상기한다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제작자들이 해양으로서의 동남아시아를 실제 크기보다 훨씬 작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또한 지도의 왼편에 있는 아프리카의 내륙을 달 모양으로 묘사한 것도 흥미롭다.

지도 7-7. ‘덴쇼소년사절단’의 항해 경로

‘덴쇼소년사절단’의 항해 경로

1597년에 예수회가 일본에 파견했던 알레산드로 발리냐노는 규슈 지역의 가톨릭 신자인 ‘기리시탄(Christian) 다이묘들에게 로마 가톨릭 교황을 알현하기를 요청했다.
1582년에 4명의 10대 일본 소년들 – 이토 만쇼, 치지와 미게루, 나카우라 주리안, 하라 마루치노 – 로 이루어진 ’덴쇼소년사절단‘이 로마를 향해 출발했다.

지도 7-9. 스페르베르호 무역 항로

스페르베르호 무역 항로

하멜(Hendrik Hamel)을 포함하여 65명이 승선했던, 네덜란드동인도회사 소속의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1653년에 제주도에 표착했다.
스페르베르호는 네덜란드의 텍셀(Texel) 무역항을 떠나 희망봉에서 인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동남아시아로 항해했다.

지도 7-8. 블라외의 아시아 지도

블라외의 아시아 지도

헨드릭 하멜 일행은 당시 유럽에서 널리 알려졌던 지도 제작자 블라외(Willem Blaeu)가 만든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 대체로 한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때, 지도는 그 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데 일차적인 근거가 된다. 조선은 이 지도에서 섬으로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에서 류큐를 거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섬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이 지도는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유럽인들에게 조선은 바다를 통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임을 보여준다.

문순득의 항해 경로

문순득의 항해 경로

전라남도 우이도의 홍어장수 문순득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파도에 휩쓰려 류큐 섬을 거쳐 필리핀까지 표류되었다. 그는 안남(베트남)을 통해 중국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1801~1803). 마침 귀향살이를 하고 있던 정약전을 만나 자신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