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학

그림 1-8 조우

조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고 있다. 이는 문화적으로 융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림은 열대와 서구 사이의 문화융합에도 해당한다.

그림 1-9 축복받은 그라만 콰시

축복받은 그라만 콰시

1690년에 아프리카 기니(Guinea)에서 태어난 콰시는 1700년경에 네덜란드 식민지인 수리남(Suriname)에 노예로 끌려왔다. 그는 진통을 완화시키고 소화를 촉진시키는 어떤 약초를 발견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소유주가 이 약초의 뛰어난 약리적 효과를 알아차렸다. 그는 칼 린네에게 이 사실을 편지로 알렸다. 린네는 이 약초의 학명을 ‘콰시 아마라’(Quassi amara)라고 붙여 주었다. 이런 사실이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주의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콰시 약초는 수리남의 최대 무역 상품으로 부각되었다.

그림 3-8 노예선

노예선

세네갈 유역에서 나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깜둥이 육백 명을 사들였는데
딴딴한 근육과 건장한 다리가
꼭 질 좋은 주물로 만든 쇳덩이 같거든

그 놈들을 손에 넣는라 내가 지불한 것은
화주와 유리구슬과 철구였으니까
반수만 놈들이 살아 남는다 해도
순이익이 팔백 퍼센트는 될 거야
우리가 리우데자네이로에 도착해서
3백명의 깜둥이만 살아준다면
곤잘레스 페이로 상사는
두당 일백 두카트는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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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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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든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그리스도여!
저 3백 개의 상품이 살아남지 않으면
내 장사는 망쳐버리고 맙니다.

그림 4-1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지탱해주는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지탱해주는 유럽

18세기에 커피, 설탕, 차 등이 유럽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면서 [열대] 식민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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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생산품들이 없었더라면 서구가 과연 오늘날과 같이 될 수 있었겠는가?

그림 4-3 마이 초상화

마이 초상화

제임스 쿡의 남태평양 항해 때 통역을 맡았던 라이아테아(Ra’iatea) 섬 출신의 마이(Ma‘i) - 영국에는 오마이(Omai)로 잘못 알려졌다 - 가 1774년에 런던에 도착했다. 왕립예술원 초대 회장으로서 유럽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레이놀즈(Joshua Reynolds)는 마이의 초상화를 그렸다.